이리저리 자료를 찾다 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있어 공유함
대한의사학회 제30권 제3호 (통권 제69호), 2021년 12월
흑사병의 서유럽 전파에 관한 오해와 왜곡: 무시스의 기록을 중심으로
남종국,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양 중세사 전공)
DOI: 10.13081/kjmh.2021.30.465
페스트균의 무기화 관련 역사를 찾다보면 흔히 발견하는 것이, 1346년 몽골군이 제노바 상인들이 점유한 카파 항구를 포위하는 과정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된 시체를 공성무기로 투척했다는 것일 것이다. 이 기록은 1448년 제노바 출신의 역사가 가브리엘레 데 무시스 (Gabriele de Mussis)가 기록한 《Historia de Morbo sive Mortalitate quae fuit Anno Domini MCCCXLVIII》에서 등장하는데, 그는 이 기록에서 몽골군이 페스트균에 감염된 시체를 카파 항구로 던져 질병을 전파했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14세기 중엽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서유럽 전파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오해, 그리고 왜곡에 대해 다룬다. 특히 이탈리아 공증인 가브리엘레 데 무시스의 기록을 중심으로, 당시 전염병 확산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 종교적 관점의 해석, 몽골군과 제노바 상인들에 대한 편견 등이 역사적 이해를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분석한다. 논문은 무시스가 실제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서술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점, 그리고 그의 설명이 시대적 편견과 맥락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전염병 발생 시 반복되는 혐오와 거짓 정보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며, 당시의 병리학적 이해가 부정확했음을 지적한다.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2023
Catapulting corpses? A famous case of medieval biological warfare probably never happened
Matt Field (Associate editor, Bulletin of th Atomic Scientists)
생물학적 무기의 역사를 충분히 파헤쳐보면, 특히 섬뜩한 주장에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1346년,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의 분파였던 킵차크 한국(황금 호드)의 군대가 크림반도의 제노바 무역 거점인 카파(Caffa)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금 호드의 지도자 야니벡(Janibeg)이 카파가 항복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전사들은 정체불명의 질병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현재 피아첸차 시 출신의 한 공증인은 "하늘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려 몽골군을 때려 부수는 듯했다"라고 기록했다. 14세기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곤경에 빠진 몽골 지휘관들에게 남은 마지막 수단은 전염병으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성벽 너머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가브리엘레 데 무시(Gabriele de Mussi)의 기록에 따르면, 성 안에 있던 제노바인들도 곧 병에 걸렸다. 그들은 배에 올라타 이탈리아의 제노바, 베네치아 등 다른 항구로 도망쳤고, 피하려 했던 전염병을 결국 자신들과 함께 실어 나른 셈이 되었다. 공증인은 “마치 그들이 악령을 데려온 것만 같았다. 모든 도시, 모든 촌락, 모든 곳이 전염성 있는 역병으로 오염되었다”라고 적었다. 흑사병으로 알려진 이 선페스트는 1347년 유럽에 상륙하자마자 유럽을 마비시켰고, 약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만약 무시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몽골군의 공성전은 치명적인 생물학적 공격이었던 셈이다.
그 이야기는 분명히 오래도록 회자되어 왔다.
1842년 폴란드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무시스의 저작이 재발견된 이후, 무기 연구자, 흑사병 연구자, 생물학적 전쟁 연구자들은 이 기록의 일부를 주목해 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흑사병(The Black Death)”을 찾아보면 그대로 등장한다. "병력의 붕괴에 직면한 Janibeg은 투석기를 사용해 역병으로 오염된 시신을 마을 안으로 던져 적을 감염시키려 했다. 이 카파에서 제노바 선박들이 전염병을 서쪽으로 실어 나르며…"라는 내용이 있다. 이 중세 시대의 혐의는 히스토리 채널을 비롯한 여러 유튜브와 틱톡 영상에도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퍼져나가고 있다. 학술 문헌에서도 이 일화는 미국의학협회지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Emerging Infectious Diseases와 같은 권위 있는 간행물에 언급되어 있다.
문제는 데 무시의 기록에 대해 의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대량살상무기(WMD) 분야의 베테랑 연구자인 장 파스칼 잔더스(Jean Pascal Zanders)는 생물·화학전의 역사에 관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무시스의 카파에 대한 주장에 대해 조사해왔다. 잔더스는 해당 이야기가 중세 시대의 포병 운용 방식, 카파의 지리적 환경, 그리고 당시 전쟁 관행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정밀하게 검토해 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무시스의 기록 해석에 대해 잔더스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무렵 학자들은 이미 흑사병이 아시아 어딘가에서 기원하여 유럽으로 서진했다는 생각에 대체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무시스의 이야기가 재발견되면서 당시 널리 퍼져있던 이 이론에 대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의 확인증거로 활용되었다. 시신을 투석기에 실어 날렸다는 부분은 그저 부차적인 생각으로 덧붙여진 것에 불과했다.
수십 년 동안 몇몇 학자들은 무시스의 기록을 인용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놓친 듯 보였다. 즉, 이 공증인은 포위 전 당시 카파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염병이 아시아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를 인용하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면 이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몽골군이 정말로 페스트에 걸려 죽은 시신들을 카파 안으로 투석기로 던졌는지 확인하려면, 무시스는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잔더스에 따르면, 무시스가 전체 기간 동안 피아첸차(Piacenza)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야 학자들은 시신을 투석기로 던졌다는 주장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잔더스에 따르면, 이는 군사사(軍事史)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비롯된 것이다. 전환점 중 하나는 영국의 스포츠 및 무기 애호가인 Ralph Payne-Gallwey가 고대와 중세 시대의 포병 기술을 다룬 저술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1907년에 출간한 《고대의 투사 무기 (The Projectile Throwing Engines of the Ancients)》에서 트레뷰셋이라 불리는 투석기형 공성무기를 집중 조명하며, 무거운 돌을 성벽 너머로 던지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했다.
페인-갈웨이는 이 책에서 “중세 기록들 중에 포위된 마을에 전염병을 일으키기 위해 죽은 말의 사체를 던졌다는 언급이 다수 존재한다”라고 인용했다. 이로 인해 트레뷰셋이 질병 확산을 위한 강력하고 일반적인 중세 무기였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 무시스의 사체 관련 주장들은 권위 있는 간행물에도 실리게 되었다. 1966년, 의사 빈센트 J. 더베스(Vincent J. Derbes)는 미국의학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기고하면서, 페인-갈웨이(Payne Gallwey)가 트레뷰셋에 내린 평가와 또 다른 사체 투척 사례를 언급하며, “페스트에 감염된 시신을 성벽 너머로 던지는 것이 실행 가능하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200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UC Davis)의 교수 마크 윌리스 (Mark Wheelis) 역시 Emerging Infectious Diseases에 기고한 글에서, 몽골군이 카파 성벽에서 1km 떨어진 곳에 진을 치면 도시의 방어자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고, 최전선은 성벽으로부터 250-300m 떨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레부셋이 충분히 그 거리를 넘어 질병에 감염된 시신을 투척하여 전염병을 퍼뜨릴 수 있다고 봤다. 한편 Yersinia Pestis를 옮기는 벼룩을 지닌 쥐는 그 정도 거리를 이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윌리스는 “데 무시가 주장한 대로 페스트 감염 사체를 던지는 일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다면 이 생물학적 공격이 포위군에서 피포위군으로 질병을 전파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SIPRI)는 1971년에 이어 1999년에도 이 두 학자의 견해를 확산시켰다. 1999년 마크 윌리스가 초창기 생물학전 역사에 관한 챕터를 저술했는데, 여기에는 부분적으로 카파 공성전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잔더스는 “SIPRI의 저서는 이 분야에서 거의 성경과 같은 존재”라며 SIPRI의 높은 신뢰도를 강조했다. 당시 SIPRI의 화학 및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 책임자였던 잔더스는 윌리스의 챕터를 검토하는 과정에 참여했으나, 당시 이용 가능한 자료가 제한적이어서 이 내러티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 2023년 8월 10일 게재된 기사임.
1346년 몽골 제국의 킵차크 칸국이 카파를 포위하던 중 흑사병 감염 시신을 투석기로 던져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전해졌지만, 현대 연구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기록은 19세기 중반 재발견된 공증인 가브리엘레 데 무시스(Gabriele de Mussis)의 서술에 기반하며, 당시 이미 흑사병의 아시아 기원설이 정설로 자리 잡은 학계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 군사사(軍事史)와 트레뷰셋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전염병 감염 시신 투척’ 설이 재조명되고, 저명 학술지와 SIPRI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간행물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나 데 무시는 카파 현장에 없었고, 당시 중세 전쟁 양상 및 지리적 조건을 감안하면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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